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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나홀로 여행객 교류 문화 경남 정착
창원 상남동 곳곳 들어서 2030 발길 이어
낯선 이들과 한잔하며 연애·직장고민 공유
“혼자만의 자유 유지하며 외로움 덜 수 있어”
“전 술 혼자 안 마십니다.”
‘혼술바’를 아는가. 기자가 혼술바에 대해 가진 첫인상은 사실 위와 같았다. 술은 기쁠 때나 슬플 때 친구나 동료와 서로 잔을 주고받으며 한잔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혼술이라니. 마치 서부시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바에 홀로 앉아 위스키 한 잔을 걸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오글거린다.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기자의 주 활동 지역인 창원 상남동 일대에 여러 혼술바가 생겨나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다수 혼술바가 밖에서는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라는 .도 흥미로웠다. 청춘 남녀가 모이는 곳이니 ‘헌팅’이 주 목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취재 현장을 누빈 기자에게도 혼술바는 선뜻 들어가기 두려운 곳. 결국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혼술바에 입성했다.
창원 성산구 상남동 혼술바 ‘도트’에서 손님들이 바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도트/
◇혼자 왔지만, 혼자 마시지 않는 밤= 며칠 전 1차로 술 한잔한 뒤 상남동의 한 혼술바를 찾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길게 놓인 ‘ㄷ’ 자 형태의 바 테이블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을 둘러싼 열 명 남짓한 손님들은 대부분 20~30대로 보였다. 누군가는 칵테일을, 누군가는 위스키 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기본 과자 안주도 테이블 곳곳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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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이한 .은 이들 대부분이 모르는 사이라는 것이다. 약속을 잡고 온 사람도,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기자 역시 같이 온 지인들과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잔을 만지작거리며 동행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옆에서 오가는 이야기도 슬며시 엿들으며 눈치 작전도 펼쳤다.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옆자리에서 회사 이야기가 나오자 맞은편 손님이 자신의 경험을 보탰다. 어느 순간에는 오래 이어온 연애가 끝난 이야기가 나왔고, 또 다른 손님은 지쳐버린 직장 생활 이야기를 꺼냈다.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유리잔 속 술이 조금씩 줄어드는 동안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조금씩 좁아졌다.
기자 옆자리에 한 20대 남성이 앉았다. 그는 “궁금해서 며칠 전에 왔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실 정도로 친해졌다. 깊이 있는 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되레 더 공감해 주고 고민거리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에서 혼술바를 찾는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누구도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는 。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말을 보탤 뿐이다. 때로는 별 의미 없는 농담 한마디에 테이블 전체에서 웃음이 터졌다. 처음 들어왔을 때 조용한 분위기는 어느새 작은 모임처럼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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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곳에서 관계를 반드시 이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연락처를 묻지 않아도 되고, 이름조차 모른 채 헤어져도 된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대화에 섞이고, 혼자 있고 싶으면 자신의 잔에만 집중하면 그만이다. 혼술의 자유로움과 술자리의 온기가 묘하게 공존하는 셈이다.
해당 업소 관계자는 “평일 퇴근길에 가볍게 들러 한잔하고 가시는 분들이 단골이 되고, 그 단골분들이 또 새로운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몇 시간 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의 이름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만날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날만큼은 혼자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의 테이블을 나눴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는 않은 밤. 혼술바는 그 애매한 마음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작은 아지트였다.
손님들이 각자 주문한 칵테일 잔을 맞대고 있다.
한 손님이 테이블 위에 놓인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낯선 사이 한잔= 며칠 뒤 혼술바에 같이 간 지인이 연락해 왔다. 다시 한번 가보자는 것이었다. 해당 혼술바는 만 20~38세까지만 입장이 가능해 갈 수 있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못 이기는 척하고 또다시 혼술바로 향했다. 이곳은 제주도 콘셉트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혼술바는 원래 2~3년 전 제주도에서 나 홀로 여행객들이 교류하던 문화가 정착된 것으로, 지난해 서울로 넘어와 올해부터는 경남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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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바 관계자는 “이 건물에만 혼술바가 세 곳이나 영업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데도 손님이 꾸준히 온다”며 “이성을 만나러 오기도 하고, 그냥 조용히 술을 마시기 위해 오는 등 다양한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그건 모두 손님 자유”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서 그런지 주위 사람들과도 쉽게 말을 나눌 수 있었다. 기업체에 실습 나온 공대생, 또래 직장인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어색할 때면 직원이 분위기를 띄우며 건배를 유도하기도 했다. 우연히 옆에 앉은 이가 대학 선배인 걸 알게 돼 인연이 되기도 했다.
혼술바 유행의 배경에는 젊은이들의 ‘외로움’이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해 4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대의 59.2%, 30대의 52.8%가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어도 상대가 없거나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답한 비율은 20·30대가 가장 높았다. 20대의 약 60%는 ‘일상에서 감정을 나눌 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혼술바 도트를 운영하는 조경준·이현승 사장은 “혼자만의 자유로움은 유지하면서도 외로움은 덜어낼 수 있는 공간”이라며 “혼자 술을 마시는 게 더 이상 낯선 문화는 아니지만, 막상 혼자 편하게 들어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 찾아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좋은 음악과 술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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