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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형주훈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6-08-19 04:3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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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해자의 눈물은 돈으로 닦이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사기를 당했다고 상상해 보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평생 모은 재산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 순간부터 피해자의 삶은 송두리째 뒤흔들린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며, 증거를 모으고, 소송을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무너지기도 한다. 배신감과 자괴감, 후회와 자책, 불면증과 대인기피증이 뒤따른다.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가정이 흔들린다. 그 상처는 단 며칠 만에 사라지지 않는다. 수년이 지나도, 어쩌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법은 이 고통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2. 법이 말하는 위자료
민법 제751조 제1항은 "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민법 제751조 제1항).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도 금전적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법의 기본 원칙이다.
대법원도 위자료 산정에 관하여 "피해자의 연령,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과 생활상태, 피해로 입은 고통의 정도, 피해자의 과실 정도 등 피해자 측의 사정과 아울러 가해자의 고의·과실의 정도, 가해행위의 동기와 원인, 불법행위 후의 가해자의 태도 등 가해자 측의 사정까지 함께 참작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부담이라는 손해배상의 원칙에 부합하고, 법원은 이러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그 직권에 속하는 재량에 의하여 위자료 액수를 확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23. 2. 2. 선고 2020다270633 판결).
3.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 '특별사정' 법리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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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산권 침해 사건에서의 위자료 인정 법리에 있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재산권이 침해된 경우에는 이로 인한 통상적인 손해는 재산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일반적으로는 그 재산적 손해의 배상에 의하여 정신적 고통도 회복된다"는 법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재산적 손해의 배상만으로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에 해당하므로, 가해자가 그 특별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위자료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5다37710 판결 등).
이 법리에 따르면, 사기 피해자가 위자료를 받으려면 단순히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재산적 손해배상만으로는 회복될 수 없는 '특별한' 정신적 고통이 있었고, 가해자가 그 사정을 미리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까지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실제 법원에서 사기 피해 사건의 위자료 청구가 기각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4. 법리와 현실의 괴리
그러나 이 법리는 현실과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다.
첫째,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은 결코 '특별한 사정'이 아니다. 사기피해를 가정해보면 그로인한 배신감, 자괴감, 불안, 불면, 대인기피 등의 정신적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은 경험칙상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를 '특별사정'으로 분류하여 피해자에게 별도의 입증 부담을 지우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둘째, 재산적 손해가 배상된다고 해서 정신적 고통이 자동으로 회복된다는 전제 자체가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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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든 사기범이 뒤늦게 편취금을 돌려준다고 해서, 피해자가 수년간 겪은 배신감과 고통, 그로 인한 후유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는 그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셋째, 현실에서는 재산적 손해조차 온전히 배상받기 어렵다. 입증책임은 피해자에게 있고, 가해자는 재산을 은닉하거나 도주하는 경우가 많다. 재산적 손해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신적 손해마저 '특별사정'이라는 높은 장벽 뒤에 가두어 두는 것은 피해자를 이중으로 고통받게 하는 것이다.
5. 위자료의 보완적 기능 — 제한적 활용의 한계
현행 판례는 재산적 손해의 발생이 인정되더라도 그 손해액의 확정이 불가능하여 배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이를 위자료의 증액 사유로 참작할 수 있다는 이른바 '위자료의 보완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07. 12. 13. 선고 2007다18959 판결).
그러나 이 보완적 기능은 어디까지나 재산적 손해의 발생이 인정되는 전제 하에서, 그 손해액 확정이 불가능한 경우에 한정된다. 재산적 손해 자체가 인정되지 않거나, 재산적 손해는 배상받았지만 그와 별개로 정신적 고통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여전히 '특별사정' 법리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위자료의 보완적 기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 법원도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률신문 2025. 4. 12.자 단독 보도에 따르면, 2025. 3. 27.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손해배상소송연구회 세미나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위자료 관련 법제를 재설계하기 위한 논의를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논의에 앞장서 주신 관계자분들께 진심어린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나아가 재산권 침해 사건에서의 위자료 법리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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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의적 불법행위, 특히 사기 등과 같이 피해자의 신뢰를 악용하는 일정한 유형에서는 정신적 고통을 '통상손해'로 인정하고, 위자료 인정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판례가 변경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비단 불법행위에만 국한할 필요가 없다. 채무불이행의 경우에도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불법행위로 인한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계약이라는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한 거래에서 상대방이 의무를 저버렸을 때의 배신감과 좌절감은, 때로는 낯선 타인의 불법행위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법원의 재량에 의한 위자료 산정도 현실의 고통을 충분히 반영하는 수준으로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6. 우물값은 우물값일 뿐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내가 판 우물을 누군가 빼앗아 갔을 때, 가해자가 우물 값을 돌려준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과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물을 파느라 흘린 땀과 노력, 그 우물에서 누렸던 추억과 기쁨까지도 함께 파괴되는 것이다. 불법행위에 의하여 겪게된 허탈감과 불안, 두려움과 눈물은 돈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고통이다. 우물값은 우물값일 뿐이다. 침해당한 시간, 흔들린 삶, 무너진 신뢰는 별개의 손해다. 불법행위는 단순히 재산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흔드는 행위다.
7. 위자료의 현실화는 시대적 과제 중 하나
위자료의 현실화는 단순히 피해자에게 더 많은 돈을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불법행위 피해자의 고통을 법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가해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는 사회적 선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한 사람의 삶과 존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태도일 것이고, 한편으로는 거짓과 불법이 난무하는 시대에 대한 경종이 될 것이다.
조신영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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